사동사를 쓰는 것 말고 우리말에서 사동문을 만드는 방법이 또 하나 있다. ‘-게 하다’가 바로 그것이다. ‘읽다’를 ‘읽히다’로도 쓰지만 ‘읽게 하다’로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사동문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숨어 있다. 다음 두 문장을 보자: ①엄마가 아이에게 밥을 먹게 했다. ②엄마가 아이에게 밥을 먹였다. 차이를 알겠는가? ①에서는 아이가 엄마의 말에 따라서 스스로 수저를 들고 밥을 먹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데 ②에서는 ①과 같은 모습 외에, 엄마가 음식을 손수 아이 입에 넣어주는 모습도 떠올릴 수 있다. ‘먹게 했다’에서는 시킨 사람의 행동이 간접적이고, ‘먹였다’에서는 간접 행동과 직접 행동이 다 가능하다는 말이다. ‘친구가 아이를 살렸다’ 같은 표현은 ‘친구’에게 아이를 살려낼 의도가 전혀 없었는데도 쓸 수 있다. ‘삼촌이 조카를 웃겼다’는 표현에서도 이런 비(非)의도성을 찾아볼 수 있다. 삼촌으로서는 조카를 웃게 만들겠다는 마음이 없었는데 조카가 스스로 웃을 수도 있는 것이다. ‘사동사’는 어떤 행동을 ‘시키는’ 말이지만, 이렇게 시킬 뜻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도 쓴다. 우리말은 이래서 묘한 재미가 있다.오늘 생각해볼 것은 사동사다. 먼저 말뜻부터 알아보자. ‘사동사’에서 맨 앞의 ‘사’는 ‘시킬 사(使)’다. 뭔가를 시키는 것, 남에게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드는 동사가 바로 사동사다. 사동사를 만드는 방법은 피동사 조어법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 즉, 동사의 어간에 ‘이, 히, 리, 기’ 중의 하나를 붙이는 것이다. ‘녹다→녹이다’ ‘앉다→앉히다’ ‘날다→날리다’ ‘감다→감기다’ 따위다. 이렇게 말을 만드는 방법이 똑같다 보니 ‘보이다’나 ‘업히다’같이 피동사와 사동사의 모습이 똑같은 경우도 생겨난다.
그런데 피동사와 달리 사동사의 경우에는 이 네 가지 접미사(꼬리에 붙는 말) 말고도 ‘우, 구, 추’가 더 있다. ‘깨다→깨우다’ ‘달다→달구다’ ‘맞다→맞추다’ 따위가 그 예다. 이 셋 중에서는 ‘우’를 붙이는 경우가 가장 많아서, ‘돋우다’ ‘비우다’ ‘새우다’ ‘재우다’ ‘(짐을) 지우다’ ‘채우다’ ‘키우다’ ‘태우다’ 등의 사동사가 있다.
그러나 사동사와 피동사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사동사는 형용사를 갖고도 만든다는 점이다. 그래서 ‘높다’가 ‘높이다’로, ‘넓다’가 ‘넓히다’로, ‘낮다’가 ‘낮추다’로, ‘늦다’가 ‘늦추다’로 품사 변화를 한다. ‘밝히다’ ‘좁히다’ ‘곧추다’ 등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형용사가 사동사로 탈바꿈하는 대목을 보아도 우리말에서 동사와 형용사의 친화성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사동사가 피동사와 다른 점은 또 있다. 피동사의 원재료가 오로지 타동사인 데 비해, 사동사는 타동사와 자동사를 모두 재료로 쓴다는 점이다. 앞에서도 이미 몇 가지 예가 나왔는데, 이 밖에도 ‘삭다→삭이다’ ‘속다→속이다’ ‘죽다→죽이다’ ‘줄다→줄이다’ ‘돌다→돌리다’ ‘살다→살리다’ ‘얼다→얼리다’ ‘울다→울리다’ ‘남다→남기다’ ‘숨다→숨기다’ ‘웃다→웃기다’ ‘솟다→솟구다’ 따위가 있다. 이 경우 자동사가 모두 타동사가 된다. (참고로, 피동사와 마찬가지로 사동사도 품사의 이름은 아니다. 피동사나 사동사나 모두 동사에 속한다. 한두 경우를 제외하면 피동사는 거의 다 자동사이고, 모든 사동사는 예외 없이 타동사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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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피동과 사동 (0) | 2009.04.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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