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이레네 이야기/에이레네家 사는 법

[링크] 옥한흠 목사의 카메라 인생

에이레네세상88 2008. 6. 12. 13:56

http://www.sarangm.com/book/book_info.asp?smgid=6818

 

 

| 또 하나의 수상집을 내면서 |

지금은 제가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메고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 이곳 저곳 돌아다닐 나이는 아닌 것 같습니다. 십여 년 전 미국 유타주에 있는 슬롯 캐니언에서 우연히 만났던 노신사가 눈에 떠오릅니다. 그는 작은 카메라 하나만 덜렁 들고 캐니언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찍고 있는 저를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더니 조금 떨어진 강가에 찍을 만한 좋은 소재가 하나 있으니 한번 가 보라는 말을 남기고 훌훌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정작 자신은 한 장의 사진도 찍지 않고 말입니다. 그때 저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먼 길을 와서 찍을 생각을 안 하다니 좀 이상한 사람이구나 했지요. 그러나 이제는 그가 누구인지 알 것 같습니다. 그는 바로 오늘의 제 모습이었습니다. 원래 젊은이들은 늙은이를 잘 모르지 않습니까? 손에 든 작은 카메라 하나, 남이 찍는 것을 구경만 하고 있는 모습, 좋은 소재가 있다는 정보를 주면서 흡족해하던 표정 등 모두가 인생의 연륜과 깊이를 담고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꼭 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얻은 것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 만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더 값진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부부의 사랑과 소중함을 새삼 발견한 기쁨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카메라를 몰랐을 때에는 너무 바쁜 사람이었습니다. 이 말은 제가 별로 좋은 남편이 못 되었다는 뜻이겠지요. 아내와 함께하는 오붓한 시간을 거의 만들지 못하고 살았으니까요. 그럼에도 착한 아내는 여자로서의 많은 아픔을 속으로 삭이며 잘 견뎌 주었습니다.
그러나 건강상의 이유로 제가 카메라 가방을 메고 나가는 일이 잦아지면서 우리 사이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 아내가 함께 동행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사진을 직접 찍지 않았지만 대신 저의 곁에 조용히 있어 주는 것으로 만족해했습니다. 자연히 산과 들을 함께 쏘다니면서 대화도 많이 나누게 되었습니다.
특히 국외로 집회를 인도하러 나가게 되면 일부러 시간을 쪼개어 멀리 있는 촬영지를 찾아갈 때가 더러 있었습니다. 우리 둘은 수십 시간씩 차를 몰고 다니기도 하고 가끔 비행기도 타야 했습니다. 낯선 여관에서 선잠을 자야 했고 시간에 쫓겨 몇 끼를 햄버거로 적당히 때워야 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풍경 사진을 찍는 일은 상당한 체력을 요하는 중노동이라 할 수 있는데 아내는 잘 견뎌 주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정말 한몸이 될 수 있었습니다. 밤낮 부부가 함께 붙어 지내는 행복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준 공신은 결혼이라기보다 카메라였다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가 되어 버렸으니까요. 이런 의미에서 우리 둘은 저의 약한 몸이 우리 둘 사이를 건강하게 만든 하나님의 변장된 축복이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제가 프로는 아닙니다. 아마추어라고 하는 편이 어울릴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의 어떤 영역을 연구하고 작품을 만드는 전문성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잡식성 동물처럼 좋아 보이면 무조건 셔터를 누르고 보는 스타일입니다. 그래도 찍을 때마다 행복했습니다. 카메라를 들지 않았다면 제 짧은 인생에서 너무나 많은 아름다움을 놓치고 말았을 테니 말입니다.

제 사진들은 이미 교회 안에서 발행되는 여러 가지 간행물을 통해 가끔 소개된 바 있습니다. 어떻게 되면 새로운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할 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이번에 두 번째 수상집을 내기로 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제가 촬영한 풍경의 출처나 찍을 때 제가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한 번도 밝힌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런 이야기들을 좀 하고 싶었습니다. 인생의 석양빛 아래서 사람은 변해도 한 장의 사진 속에서 여전히 변치 않고 남아 있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행복이 어떤 것인가를 다른 분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같이 사진을 들고 늙음도 잠시 잊어버릴 수 있고 인생의 슬픔과 고통도 털어 버릴 수 있는 분들이 많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면 이런 사진도 하찮은 것이 되고 말겠지요? 그래도 괜찮아요. 그 때에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한 분만으로 우리 모두가 영원히 만족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거기에 무슨 카메라가 필요하겠어요. 주님의 축복을 빕니다.

2007년 10월
옥한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