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국어대사전≫대개혁이 필요하다
[서평] ≪둥지 밖의 언어≫, 이상규, 생각의나무
“엉퍼드키 엉퍼드키 울어뿔고 싶다.
웅굴을 빠져나온 돌캉맨치로 그래
아부지예, 어무이예, 부르미
배껕마당부터 우신에 모지리 적수고 싶다.”
위는 토박이말 시집 ≪니 언제 시건 들래?≫(한국시인협회, 시로여는세상, 2008)에 있는 문인수 시인의 ‘옛집은 사투리다“라는 시 일부다. 위 시를 우리는 잘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면 국립국어원 누리집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확인해볼까? 위에 쓰인 낱말 중 아부지는 “‘아욱’의 방언(경북)”으로 다른 낱말이고, 웅굴은 “‘우물01’의 방언(강원, 경북)”이라고 되었을 뿐 엉퍼드키, 울어뿔고, 돌캉맨치, 어무이, 부르미, 배껕마당, 모지리 등은 올림말에 없다. 그러면 위 시를 이해하려면 시인에게 연락하여야 하나? 사투리를 올림말에서 빼버린 ≪표준국어대사전≫의 문제점이 드러난다.
오탁번은 ≪헛똑똑이의 시 읽기≫(고려대학교출판부, 2008)란 책에서 “사실 시라는 장르에서 ‘표준어’라는 개념은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좀 야만적이기까지 한 것이
다. 사랑과 슬픔을 어떻게 문법적으로 표준어에 맞추어 전달할 수 있겠는가? 표준어라는 것은 사회적 ▲ ≪둥지 밖의 언어≫(이상규, 생각의나무) 책 표지
규범으로 필요한 것이지 오밀조밀하고 변화무쌍한 ©생각의나무
정서를 토로하고 시의 도구로 하는데 아무래도
최적이라고 우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그야말로 문학적 정서를 표현하는 데는 사투리를 제한하고는 전혀 맛이 우러나지 못한다. 그래서 사실 시인, 소설가들은 질펀한 사투리 잔치를 벌이곤 한다. 그런데 우리의 ≪표준국어대사전≫은 그런 사투리를 사정없이 짓밟아버렸다. 올림말로 등재된 것은 극히 일부일뿐더러 설령 등재되었어도 “~의 잘못”이라고 설명할 뿐이다.
이런 ≪표준국어대사전≫을 질타하는 책이 나왔다. 이상규 현 국립국어원장이 쓰고 생각의나무가 펴낸 ≪둥지 밖의 언어≫가 그것이다.
책은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얽힌 이야기를 한다. ≪옥스퍼드 영어사전≫ 출간사업을 주도한 영국 언어학회에서는 이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려고 영국을 대표하는 많은 학자뿐만 아니라 일반 지식인들은 대거 참여시킴으로써 그들 사전 사업의 성과를 인류 문명사 발전의 큰 위업으로 찬양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특히 살인혐의로 정신병동에 수용되어 있던 월리엄 마이너라는 사람이 정신병동에 갇힌 무료한 삶을 달래려고 어느 누구보다도 정확한 사전 편찬 자료를 작성하여 끊임없이 옥스퍼드대학으로 송고한 예를 들려준다. 그러면서 71년의 긴 세월을 거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1만 5천 490쪽에 41만 4천 825개의 표제어, 182만 7천 307개의 예문을 갖춘 10권짜리 ≪옥스퍼드 영어사전≫이 어떻게 완성되었는지 얘기한다.
반면에 우리 ≪표준국어대사전≫은 8년 만에 국민의 참여없이 소수 학자가 벼락치기로 추진하여 누더기로 만들었음을 고발하며, 엄민용이 쓴 ≪건방진 우리말 달인≫(다산초당, 2008)의 한 대목을 소개했다.
“이 우달이가 이곳저곳에 가기도 했지만 국립국어원은 서둘러 ≪표준국어대사전≫ 개정판을 내어야 하고, 누리집 ‘표준국어대사전’ 찾기도 고쳐 놓아야 해. 그렇지 않으면 ≪표준국어대사전≫과 국립국어원 누리집 내용을 철썩같이 믿는 국민은 계속 엉터리 국어생활을 할 수밖에 없잖아.”
지은이는 ≪표준국어대사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사전 둥지 바깥 언어 곧 사투리를 모두 올림말에서 빼버렸다는 것을 지적한다. 책은 “지난 세기 수수방관하여 잃어버린 인간의 언어유산을 다시 복원하고 이를 불러모아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죽어가는 강을 살려내고 사라진 새와 물고기가 다시 되돌아오도록 노력해야 하듯이, 소수 언어인 변두리 방언의 미학이 우리 일상 속에 소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책은 엄민용의 말을 빌려 “지금 사투리나 비표준어로 다뤄지는 말을 쓰지 않으면, 결국 우리말은 오늘의 의미로 화석처럼 굳어질 수밖에 없어. 그러다 보면 우리말의 가짓수가 줄어들고, 먼 훗날에는 남의 나라 말을 빌려야만 겨우 뜻을 전할 수 있게 될 거야. 그것이야말로 우리 말글을 죽이는 일이 아니겠어.”라고 말한다.
또 책은 “규범을 충실하게 반영해야 할 <표준>대사전은 어문규범과 관계없이 올림말을 뒤죽박죽 섞어 놓았다. 신어, 다듬은 말(순화어), 국어심의회 사정을 거치지 않은 외국어 음차표기, 외국 인명과 비명, 고어, 전문어, 표준어로 규정되지 않은 방언, 북한어, 개인어 등은 표준어가 아님에도 사전 편찬자 임의적 판단으로 표준어인 것처럼 올림말로 선정하였다. 사전의 사용자인 국민을 속이는 셈이다.”라고 지적한다.
▲ 국가 사전 지식 생산 관리 협업 모형 © 이상규
이어서 책은 “수도 인구 20만 시대의 소산물인 표준어가 지역적 측면에서 ‘서울’을 내세운 것은 ‘반지역적’이고 ‘수도 중심적’인 권위적 사고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계층적으로 ‘교양인’이란 누구를 두고 한 말인가? 따라서 표준어의 기준에서 한 차원 나아가 ‘한 민족 간에 두루 소통되는 공통성이 가장 많은 현대어’라는 ‘공통어’의 개념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뿐만 아니라 책은 우리 동포들은 연해주, 연길, 용정촌, 송화강 등 우리 한자음으로 읽는데 이를 엔하이저우, 엔지, 룽징춘, 쑹화 강으로 표기하라고 강요하는 점도 문제로 꼽는다. 특히 우리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을 장백산과 동의어로 처리하면서 백두산의 뜻풀이에는 ‘창바이’라고 표기했다며 우리 스스로 역사를 부인하는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꾸짖는다.
또 우리말의 전통 조어 양식은 고유어나 한자어와 결합하는 복합이나 합성의 방식인데 최근에 와서는 이러한 전통적인 고유어의 조어 양식이 무너지고 대신 한자어와 영어, 영어와 영어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조어형이 절대다수를 차지해 엉터리 영어가 이 땅에서 고유어의 빈자리를 완전히 차지하고 있는 꼴임을 얘기한다.
거기에 더하여 언론보도를 통해 외국어와 외래어의 구분없이 <외래어표기법>에 따른 국적불명의 외국 음차어(音借語)가 대량으로 유입되었으며, 이는 국어심의회 심의 절차를 단 한 번도 거치지 않은 채 그대로 방치하여 그야말로 외국어가 넘쳐나는 상황이 된 점도 지적한다.
지은이는 그동안 국어 정책 특히 사전에 관해 고민했던 것을 격렬하게 토로한다. 자신이 국어정책을 총괄하는 우두머리이면서 스스로 국립국어원의 잘못을 지적하는 모험을 감수한다,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절절한 외침을 가슴에 담고 그를 도와 ≪표준국어대사전≫이 어떻게 수정되어야 하고, 거시적인 국어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지 같이 고민할 필요가 있을 터이다.
다만, 이 책에도 옥에 티가 있다. 지은이의 소회가 남다른 탓인지 격렬한 마음을 중복해서 토로하는 중언부언이 눈에 띈다. 또 토씨 “의”를 남용하여 “개별 올림말의 중심의 뜻풀이의 전체 구조를~”처럼 문장을 헤집어 놓기도 했다. 지은이는 물론 편집자의 꼼꼼함이 아쉬운 대목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표준국어대사전≫의 문제점을 올바로 지적하여 어떻게 고쳐야 할 것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준 걸작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지은이가 국립국어원의 우두머리에 있었기에 그 누구보다도 그런 점을 명쾌하게 지적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른다. 국어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하고 ≪표준국어대사전≫의 개정에 힘을 합쳐야 하지 않을까?
나는 내부고발자인도 모른다 [대담] ≪둥지 밖의 언어≫ 지은이 이상규 국립국어원장
- 지은이는 나라의 국어정책을 총괄하는 국립국어원장이다. 그런데도 책에서는 국립국어원이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의 문제점을 과감하게 지적한다. 그렇게 한 까닭은 무엇인가? “≪표준국어대사전≫의 가장 중요한 고객은 국민이다. 따라서 국민이 불편해 한다면 당연히 고쳐져야 한다. 국립국어원장으로서, 학자로서 그 문제를 누구보다도 더 잘 아는 나는 그걸 은폐할 일이 아니라 알림으로써 ≪표준국어대사전≫을 보완하는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내부고발자인도 모른다 (웃음)” - ≪표준국어대사전≫의 문제점을 고치는 작업에 얼마나 진전이 있었나? “웹상에서 곧 국립국어원 누리집 검색창에서 대폭 수정이 이루어졌다. 많은 올림말의 삭제와 보충이 있었고, 낱말 풀이도 많이 고쳐졌다. 또 교과서에 있는 말을 반영했다, 하지만, 아직도 미 진한 부분이 많을 것이기에 계속해서 꾸준히 보완해 낼 것이다.” ▲ 대담을 하는 ≪둥지 밖의 언어≫ 지은이 이상규 국립국어원장 © 김영조 - 지금 우리나라는 가장 우수한 글자를 가지고 있으며, 문화도 그 어떤 나라에 못지않게 대단한 나라임은 분명하지만, 제 나라 언어와 문화를 우습게 보는 사회분위기는 큰 문제이다. 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역사적 관점에서 우리는 너무 빨리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이루었다. 그 과정에서 문화와 소통을 소홀히 한 것이 사실이다.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언어와 문화를 홀대해서는 절대 안 된다. 공장을 만드는 비용의 수백 분의 1이면 효과가 드러나는 것이 언어와 문화다. 그래서 정치지도자들의 철학과 인식이 중요하다.” - 국립국어원장으로서 국민에게 부탁할 말이 있다면? “모든 정부기관은 방법과 속도의 문제일 뿐 국민에게 이바지하려고 노력하는 건 분명하다. 특히 국립국어원도 국민이 볼 때는 많이 미흡하겠지만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 달라. 미시적인 것보다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국어정책에 대한 합리적인 채찍을 주었으면 고맙겠다.” 대담 도중 그는 일본의 일본어사전은 30권의 방대한 분량이지만 우리는 겨우 4권에 불과하다는 점을 이야기하며 정부가 빨리 지식정보를 추출하여 그 데이터베이스는 민간과 공유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제 다음 달이면 국립국어원장직에서 물러나 학자 본연의 임무로 돌아간다. 하지만, 대담을 하는 내내 국립국어원장으로서 마지막까지 온 정성을 다 쏟을 것이란 느낌이 들게 했다. 국어를 사랑하는 한 학자로서, 국어원장으로서 한치도 소홀함이 없도록 하려는 열정이 여실히 묻어나는 이야기를 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대담을 마치면서 나는 후임 국립국어원장도 그런 사람이 오기를 간절히 비손하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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